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여자친구가 없었을 때 집에 붙여놓은 "사랑해요 민주노동당" 스티커를 보고 엄니가 "너는 고작 사랑하는게 민주노동당"이냐 쏘아 붙임을 당했던 사람이다. 97년부터니깐 딱 10년이 되어가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람이겠다.
사실 이번대선에서 많이 논외로, 게다가 블로그 스피어에서 제외되는 후보가 "권영길"이다. 벌써들 그런데로 진보측에 한발 담그고 있거나, 담궜던 전력이 있는 사람은 벌써부터 "문국현"에게 올인을 던지고 있다.
존배를 배반하지 않는 문국현
문국현, 또다른 노무현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겠지만, 내가 아는 지인 한명이 딱 지적하듯 그는 "정직하고 착한 자본가", "귀여운 부자"다.
그가 진정 정직한 노동자나, 서민이었으면 사실 제대로 된 자본가의 역활을 하지 못한다. 문국현 그도 존재를 배반할수 없는 처지이기에 다만 다른 자본가보다 정직했고 착하다는 것일 뿐이다. 사실 그의 선택이 정직과 자본중에 하나를 고르랐을때 자본에 더 기울었다는 것은 그의 주장에서 쉽게 볼수 있다.
사람중심의 사업을 한다는 그가 전혀 사람중심적이지 않는 FTA를 찬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얘기하고 혹은 비정규직 문제를 일거리 확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허구적 주장들을 얘기하는 건 그 같은 이유에서다. (노무현, 유시민은 안그랬던가?)
무릇 20:80에서 80이 20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20이 권력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고, 나머지 80의 사회적 의식을 오도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
문국현을 지지 하는 것이 바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계급 나의 처지를 대변해주지 않으면서 "정직하고 착한 자본가"에게 기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연정, 연합 왜 자꾸만 얘기가 나오나?
어제 "권영길 후보와 함께 하는 블로거 간담회"에 갔다. 내가 느낀 권영길에 대한 느낌은 상상외였다. 간담회에서의 그의 말투는 또박또박했고 유머러웠으며, 어떤 대선후보에 비기지 않고, 손색없을 정도로 논리 정연했다. (이건 단순한 당원으로써의 애정차원이 아니다.)
연정이란 주제가 간담회에서 나왔을때, 나는 대다수 관중들이 문국현과의 연합을 바란다는 의미라는 것을 생각했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나올때 나오는 음악을 백뮤직으로 깔고 등장하는)이명박에 대항마로 상정되어버린 문국현에게 힘을 보태주라는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지겨운 비판적 지지론이지 않을까 한다.
거대악에 도전하는 스타가 문국현이 된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들이 전개된다.
10년동안 천천히 느리게 진정한 민주주의적 절차의 체계를 가지고, 실(진성)당원제로 당의 진정한 모습을 만든 이들에게, 그리고 그 단단한 기반위에서 투표로써 당선된 후보에게 거대악 퇴치의 걸림돌이다 표현하는 것은 진짜 문제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거대악의 퇴치를 담당할 사람은 문이 아니라, 진정한 그 반대에 있는 권영길이 맞는 것이다.
권영길의 선거운동의 방향은?
다만 권영길의 선거운동이 뜨지 못하고 있다. 잘 얘기하고 전파되면 진정한 정책선거에서의 참모습을 보여줄 후보가 기존언론세력에 배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그대로 둘것인가? 아니다 치고 나와야 한다.
정작 권이 뜨지 못하는 문제는 이슈파이팅을 혹은 의제설정을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선거 운동이다. 먼저 권후보는 단독 간담회보다는 다른 후보와의 연합 간담회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티비토론이던, 라디오건 간에 다이다이로 맞짱을 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분명 옥석은 그 상황에서 가려진다.
두번재로는 블로그 언론에 주력해야 한다. 입소문에 권영길의 진실함과 진솔함이 담겨야 한다. 먼저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나서줬으면 한다. 일종의 단순한 선전운동이 아니라 진솔한 삶의 글로써 블로그를 매개로 퍼져나가야 한다. (펌질은 단순 복사는 이제 그만...)
단순한 애정이 그친 "지지해요, 사랑해요"가 아니라, 권후보의 허점을 우리가 먼저 공략하고, 같이 토론하면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튼 재미있었다. 권후보 간담회
다른 당의 후보들이 나올때도 한번 더 가봐야겠다. 좀더 자세한 이번 간담회의 내용을 보려면 다음의 링크를 따라가길 바란다.
권영길, 블로거와 만나다
오늘 어떤 글을 보면서 적잖이 한숨이 나왔는데...
바로 http://www.soyoyoo.com 블로그의 위키피디아의 성공, 한 명의 진중권보다 4백만의 관객이 낫다 이었다.
위키피디아가 대중의 긍정성에 기대하고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을 <디-워>와 400백만 관객을 같은 반열에 올려두는 것을 보고 적잔히 놀랐다는 말이다.
그럼 진중권은 브리커니아 백과사전이고, 400백만 관객은 위키피디아인가?
먼저 그 블로그 주인분에게(트랙백을 통해서 오시겠지만,) 아니면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분들에게 몇가지 묻고 싶다.
1. 다수 대중의 선택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2. 그 선택을 비판하는 이들이 다수 대중에게 소외를 당하는 것은 맞는 것인가?
<디-워>지지 대중들은 사회적 다양성을 평론가들이 막아선다 했지만, 사실 보통은 평론가와 관객간의 의견의 차이뿐이었다. 그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디-워>지지자들이었다. 일개 독립영화 감독, 제작작의 홈페이지에 있는 개인적인 글가지고 집단 이지메를 내는가 하면, 영화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와서 2000개나 되는 악플로 도배를 하는 가 하면, 서로가 '5호담당제'를 구성해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골라내고 배척해 낸다.
위키피디아의 힘은 '대중에 대한 긍정적인 신뢰'에도 있지만, 끊임없는 자신의 대한 비판과 수정을 감뇌할수 있어서 이다. 다수 대중이기때문에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지만 의미있기 때문에 선택이 되고 보호를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브리커니아 사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워>지지자들의 행동들은 위키피디아의 대중에 대한 신뢰와 통하는 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사회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아마도 이런 대중에 의한 파시즘은 다음과 같은 글로 설명되지 않을까 한다.
<디-워>지지자들은 Cinema Blues의 이송희일과 디워현상 (2) - 한국에서 영웅만들기 에서 처럼 심형래를 다음과 같이 자신과 동일시 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심형래가 이토록 뜨는 건 사람들이 너무나 영웅에 목말라 간절해 있어서지요. 충무로에서 소외되고 어쩌고, 약자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한 사람, 이미 성공한 사람, 혹은 이제 성공이 눈에 보일 것 같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을 영웅으로 만듭니다. 영국에서 국민스타가 된 폴 포츠(모 프로그램에서 오페라 불렀던 휴대폰 세일즈맨) 같은 사람은 한국에선 절대로 영웅이 못 됩니다. 열정과 끈기로 꾸준히 노력해 그것을 정당하게 평가받고자 하는 사람, 그 과정 자체를 평가하며 소위 '소박한 영웅'을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은. 한국에서의 영웅은 철저하게 성공했거나,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지요. (여기에서의 성공이란 철저하게 '돈' 혹은 '권력'에서의 성공이죠.) 이른바 승자독식, 이긴 사람에게 열정도 꿈도 집념도 뭐고, 모든 미사여구와 도덕적 가치까지 다 부여해주는 시스템. 이런 영웅 하나 만들어놓고 절대적인 숭배를 보임으로써 쾌감을 얻는 게 한국에서의 영웅숭배 패턴이고요. 그들에게 이송희일과 김조광수의 진짜 죄목은 이거 아니겠어요? "우리 구국의 영웅님과 그 추종자인 우리들을 집단으로 깐 주제에 두 자 성 쓰는 개페미에 호모새끼들." 사실 이송희일은 디워와 심형래를 깐 적도 거의 없습니다. 그의 글은 워낙 심하게 왜곡 오독돼서 그렇지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겨냥하고 있는 건 '막가파 심형래 지지자들'입니다. 김조광수 대표 글 읽어보니 뭐 별 내용도 없네요. 글을 왜곡해서 읽고 너무 심하게 인신공격하더라, 이거 아닙니까? 혹자들은 김조광수의 올미다 흥행 호소글 놓고 지가 한 짓은 잊어먹었다고 난리던데, 아니, 개봉도 하기 전에 나와서 눈물 쥐어짜며 호소하는 거하고, 영화 개봉해서 평론가 관객층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받고 있는데도 시장에서 밀리니까 호소하는 거하고 진정 같은 급이란 말이죠?제발 진정들 하길 바란다. 진중권이 한 얘기중 틀린 얘기 하나도 없더라.
K본부의 모 인터뷰, M본부의 쇼프로그램에 그가 흘린 눈물에 이상하리 만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가 말한 한풀이식 고해사와 음모론은 그에게 더이상의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영화를 당당하게 만드신 감독님이 공식인터뷰자리에서 찔찔 울기나 하고..
보통 거장이라는 영화의 감독들이 영화 상영전에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간극장적 인생 레파토리를 되짚으며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것을 봤는가?
게다가 그가 그런 인터뷰에서 말한것이 뭔가? 수많은 사람들의 <용가리>에 대한 언급들이 자신에 대한 오해이며, 그런 평가를 했던 비평가들을 비난했다. 그래도 원래 <용가리>를 혹평할때도 흔히들 "심형래"를 욕하진 않았다. 문제는 그보단 되도 않는 과대포장에 정부까지 끼여들며 부풀려진 애국주의적 허풍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심형래"는 그런 비판과 혹평을 다 자신의 것으로 가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그 인터뷰들은 계속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참 괴기스럽다.
그에 대응하는 심빠라고 자처하는 네티즌의 양상또한 괴기스러웠다.
익스트림 무비의 "순수한 괴수영화의 유전자를 계승한 300억 원짜리 B급 영화"에 <디워>가 어떻게 B급이냐며 오독을 하는가?(아니 이건 굉장한 찬사아닌가? -,.-)
좀더 강한 비판지점으로 ozzyz님의 "디 워 단평"에서는 "<용가리> 전까지 심형래 감독이 이룩해놓았던 저예산 특촬 장르영화의 빛나는 성과, 이를테면 <티라노의 발톱>같은 뿌듯한 기억을 밟아 짓이겨 끝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으깨 날려버리는 듯한 경험의 총체다." 라고 했지만 이것은 웃기게도 이 문단이 성립하려면, <디워>이전의 심형래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올 문장이다. 익스트림 무비의 글도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비판점을 충분히 얘기하면서도 괴수영화의 유전자를 계승했다는 찬사 또한 같이 있지 않은가?
그에 각각 달린 몇백개의 리플들을 보자면 진짜 누가 말하듯 대중에 의한 "파시즘의 시대"라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백보 양보해서 <디워>를 본 비평가들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A, B, C의 3가지 평가라면 A, B, C 모두 다 <디워> 최고에요를 남발해야 한단 말인가?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 다분히 공격적이었지만, 거기에 틀린 얘기가 어디있는가?
"안슬기"감독은 선생신분에 자신의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를 만들때 2000만원 대출을 받아서 겨우겨우 영화를 완성시켰다. 지금도 여기저기 독립영화계에서는 자본과의 싸움을 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영화를 홍보할 어떤 언론도 없다.
그들 입장에서 보는 "심형래"의 엄살은 충분히 욕먹을만하다.
그래서 나는 이송희일과 김조광수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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